Isaac Newton (1642-1727)

I do not know what I may appear to the world, but to myself I seem to have been only like a boy, playing on the seashore and diverting myself in now and then finding a smoother pebble or prettier seashell than ordinary, while the great ocean of truth lay all undiscovered before me.

시끄러운 울음소리, 암탉이면 더 시끄러워

이런 일이 가끔 있다. A는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뭐든 잘 하는 학생이다. B는 별로 눈에 띠지 않는 타입으로, 공부는 평균보다 조금 못하며 실수가 잦은 학생이다. A와 B는 서로 모르는 사이이며 다른 동네에 살고, 또 둘의 능력 외의 부분, 그니까 외모, 성격, 주변 사람들의 성향 등은 비슷하다고 하자. 어느 날 A가 인간관계에서 큰 실수를 했다. B도 똑같은 실수를 했다. 이 때 주변 사람들은 그 실수를 어떻게 평가할까? 많은 경우 사람들은 A의 실수에 대해선 "그럴 수도 있지"라고 넘기는 반면에, B의 같은 실수에 대해선 "쟤 드디어 사고 한번 쳤구만"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기존의 인상에 근거해서 개인의 행위를 판단하기 때문이다. 공정하지 않다는 느낌, 충분히 들 수 있다.

비슷한 일이 서로 다른 두 개인이 아닌 두 집단에 대한 평가에서 일어난다면 어떨까? 남성과 여성 말이다.

 

'고정관념'을 재정의하기

 얼마 전 아이추판다님이 블로그에 '장점을 재정의하기'라는 글을 올렸다. 남녀 성역할에 대한 사람들의 고정관념에 대한 연구에 대한 것이었다. 연구에서 참가자들은 경찰서장으로서 (1)거칠고 튼튼한 현장파 경찰관과 (2)행정업무에 능숙하고 가족지향적인 책상물림 형 경찰관 중 누가 더 적합한지를 골라야 했다. 이 때 조건에 따라서 후보의 성별이 다르게 주어졌다.

어떤 참가자들에겐 (1) 후보가 남성, (2) 후보가 여성인 것으로 주어졌고, 다른 참가자들에게는 (2)가 남성이고 (1)이 여성인 것으로 주어졌다. 재미있게도, (2) 책상물림 형 후보가 남성이라고 제시받은 경우에 참가자들은 그의 가족지향적인 면을 경찰서장이 되기에 장점으로 꼽았지만, 같은 후보가 여성인 조건에서는 이를 단점으로 꼽았다. 이 결과는 사람들이 '모든 남성이 경찰서장이라는 직업에 여성보다 더 적합하다'라는 불합리한 신념, 즉 고정관념을 가진 채 끼워맞추기 식으로 (하지만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 채) 남성의 장점을 재정의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1]

왜냐하면 심리학에서 말하는 '고정관념'이란,

집단에서 우세하게 나타난다고 여겨지는 (일반적으로 부정적이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은) 성격을 개인차에 관계없이 각각의 구성원에 부여하는 집단의 구성원에 대한 전반적으로 과도하게 단순한 관점[2]

이기 때문이다. 즉 '대부분의 경우 남성이 여성보다 신체적인 힘이 세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고정관념이 아니지만, 더 나아가 개인차를 무시하고 '모든 남성이 여성보다 신체적 힘이 세다'고 생각하는 것은 고정관념이다. 이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을뿐 아니라, 사실관계 자체가 틀려먹은 명제다. 이 점을 증명하는 데엔 사진 한 장이면 충분하다. 자, 보라.

Mother_russia

'마더 러시아'의 어느 필부의 위엄 (...)

즉, 평균적으로 또는 일반적으로 말할 때는 참인 집단의 특성일지라도, 이걸 모든 개인에게 적용하는 순간 고정관념이 된다. 인지 심리학자들과 사회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이 이런 식의 고정관념의 유혹에 빠지거나 고정관념을 유지하려 하는 이유 중 하나를 '인지적 효율성'에서 찾는다. 현실은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평균적으로 여성은 남성들보다 신체적 힘이 약하지만, 어떤 여성은 어떤 남성보다 힘이 세기도 하다", "여자 A, C, D는 보통의 남자들보다 힘이 세군" 등과 같은 식으로), 이를 단순화하여 머릿속에 저장해 놓으면 ("모든 여자는 남자보다 힘이 약하지") 관련된 생각을 담지하고 처리하는 데에 적은 인지적인 에너지를 쓸 수 있고, 남는 에너지를 다른 곳에 사용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공학적으로 말하자면, 고정관념은 현실에 대한 일종의 거친 모델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같은 실수도 남자 경찰서장이 했으면 '그럴 수 있지'

이런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끼칠 수 있는 해악을 보여주는 연구를 같은 연구진이 같은 저널에 2010년에 실었다. 앞서 말했듯 실수에 대한 것이다. 사람들은, 기존 성역할 고정관념에 잘 맞는 직업을 가진 사람의 실수를, 성역할에 잘 맞지 않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실수에 비해서 더 잘 봐준다는 것이다.[3]

이를 확인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실험자들을 두 조건으로 나눠서 가상의 시나리오를 읽게 했다. 글 속의 인물은 '경찰서장' 또는 '여자 대학의 총장' 이었다. 이는 각각 남성과 여성에게 더 잘 어울린다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직업이다. 글 속에서 경찰서장은 충분한 경찰관을 보내지 않는, 여자 대학의 총장은 충분한 대학 경비원을 보내지 않는 실수를 저지른다. 이 때 참가자가 속한 조건에 따라서 주인공은 남자이거나 여자였다. 그 후 참가자들은 주인공에 대해 평가하도록 했다. 한 명의 참가자는 한 명의 주인공이 나오는 하나의 글만을 읽었다.

그 결과, 사람들은 같은 실수라도 여자 경찰서장이 저지른 실수를 남자 경찰서장이 저지른 실수보다 더 심각한 것으로 보았다. 이는 여자인 엔지니어링 회사 CEO이나 여자인 법원장이 실수를 저질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반면에 남자가 여자 대학의 총장일 때 실수를 저지른 것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여자가 여자 대학의 총장일 때 실수를 저지른 것에 대한 평가보다 더 혹독했다.

여성 지도자들이 올라서있는 유리 절벽

실험의 결과를 일반화한다면, 사회적으로 높은 자리에 있는 여성의 경우, 같은 실수를 해도 남성보다 더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여성 대학의 총장'과 같은 예외적인 직업을 제외하고, 우리는 대부분의 지도자의 자리는 남성에게 더 적합한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회나 조직 내에서 여성이, 비슷한 능력을 가진 남성이 비해 위계질서 내에서의 상승에 어려움을 겪는  현상을 경제학에서는 "유리 천장(glass ceiling)"이라고 일컫는다. 이러한 유리 천장을 뚫고 어렵사리 지도자가 된 여성이 처해있는 위험, 다시 말해 이들이 남자 지도자보다 더 쉽게 실패할 수 있는 (잘 보이지 않는) 위험을 사회 심리학자 Alex Haslam은 "유리 절벽(glass cliff)"이라고 명명했다. 앞서 소개한 연구는 이러한 유리 절벽이 실제로 존재함을 잘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다.[4] 

연장선상에서 저자들은 논문의 제목을 "어렵사리 얻어내어도 쉽게 잃어버린다(Hardly won, easily lost)"로 정했다. 기존에 남성에게 더 적합하다 여겨지는 직업을 갖고 있는 여성 지도자들은 외부로부터 더 혹독한 비판적 시선에 노출되어있다는 것이다. 이는 '양성평등'의 담론이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고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잦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직장인 여성의 평균 소득이 남성의 소득에 비해 한참 낮고 여성에게 양육 등 기존의 성역할을 강하게 요구하는 한국 땅에서 우리가 음미해 볼만한 이야기다.

Super_mom_figure

직장 여성의 현실을 보여주는 슈퍼 맘 액션 피겨 [5]


일부 실험 심리학자들은 실험 참가자가 스스로 보고하는 식의 절차를 통해 이뤄지는 심리학 연구들을 몹시 깐다. 애초에 뭘 재고 있는지가 엄밀하게 검증되지 않은 도구를 이용하여 개인의 심리적 요소를 측정한다는 점이 방법론 상에서의 치명적인 단점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 비판은 타당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기보고 식 방법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우리 삶과 밀접히 연관된 상위 수준의 경험적 증거들이 있는 듯이 보인다.

 

참고자료 및 주석

[1] Uhlmann, E. L., & Cohen, G. L. (2005). Constructed criteria: Redefining merit to justify discrimination. Psychological Science, 474-480.
[2] Sutherland, S. (1995). The Macmillan Dictionary of Psychology. (2nd ed.). Basingstoke, UK: Macmillan Press. Null Model: 심리학에서 '고정관념'에서 재인용.
[3] Brescoll, V. L., Dawson, E., & Uhlmann, E. L. (2010). Hard Won and Easily Lost. Psychological Science, 21(11), 1640-1642. 
[4] Financial Post - Mistakes are more tolerated when you're the right gender for the job
[5] like no one님의 이글루: super mom action figure

앞으로 올라올 글들 (수시 업데)

앞으로 올리려는 포스트들의 주제입니다.

  • 진보는 더 강박적일까?: 합법성과 정당성의 문제, 정치의 신경과학
  • 나쁜 기억을 지워주세요: 트라우마를 지우려는 노력, 어떤 방식이 있고 그 기술은 어디까지 왔나.
  • 잔인한 심리학 연구들 경연대회: 아무리 진리탐구가 중요하다지만 이렇게까지?
  • 공황 장애(panic attack)를 예측하기
  • 집중력 뇌파 지표 이야기
  • 우리의 뇌는 자유의지가 있다고 외치는가?: 자유의지를 부정한 유명한 실험 & 관련 최근 추가 연구과 해석
  •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 현실에서 어떻게 드러날까? & 관련된 최근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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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뇌는 자유의지가 있다고 외치는가?

내 인생은 내가 살아내는 것인가?

비극적인 프랑스 영화 비브르 사비(Vivre sa vie, 1962; 장 뤽 고다르)에서, 파리의 뒷골목에서 성매매를 하는 여주인공 나나(Nana)는 자신이 지긋지긋한 삶에서 탈출하지 못할 것이라고 여긴다. 그녀는 동료 이브테(Yvette)에게 이렇게 말한다.

탈출은 덧없는 꿈일뿐이야. 정말로 (Escape is a pipe dream. It just is).

하지만 이러한 잿빛의 결정론(determinism)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이 사회적으로 낮은 지위에 처하고 고생을 하는 것에 대해 주변 상황을 탓하는 친구 이브테(Yvette)의 생각에 반대한다. 그녀는 자신의 행동은 스스로의 힘으로,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라고 따라서 그에 따르는 모든 결과는 온전히 자신의 책임이라고 말한다.

봐봐. 내가 말하고 싶으면, 난 말해. 내가 춤을 추고 싶으면, 춤을 추는 거야.

이러한 특유의 철학을 통해서 이 힘 없고 보잘 것 없는 인물은 처참한 이야기 진행 속에서도 일종의 당당함을 획득한다. 하지만 나나의 말처럼 우리는 정말로 우리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고 말하는 것일까?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중세 시대 대부분의 서양인들에게 인간은 신이 예정한대로 움직이는 존재였다. 동양에서도 사람이 잘 되고 못 되고는 하늘의 뜻이라고 믿었다. 요새도 한국 어르신들 입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인간은 아무리 발버둥쳐봐야 신, 하늘, 천주, 또는 하늘님이 정해놓은 길을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은 인문주의 혁명과 과학 혁명을 거치며 바뀌어갔다. 우주의 중심을 인간으로 끌어오면서, 서양의 근대 지식인들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제약하는 것을 신이 아닌 다른 것들에서 찾게 되었다.

예를 들어서 근대 사회학은 인간이 관계 속의 망에. 조직이나 단체 속에 어느 한 위치를 점유하며, 개인으로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까발렸다. 우리는 사람들과 특정한 관계를 통해 정체가 결정지어지며, 그 사람들과의 관계에 따라서 특정한 양식을 통해서 의사소통한다. 예를 들어 나와 선생님, 나와 아버지, 나와 내 애인/헤어진 애인/5년만에 만난 어색한 친구 등은 서로에게 기대하는, 매우 구체적인 행동의 양식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틀에 잘 맞추어 행동해야만 한다. 어떠한 장소에서도 결코, 우리들은 자연적인 개인 대 개인으로서 만나지 않는다. 이러한 행동의 규범을 잘 따르는 사람을 우리는 사회화가 잘된 사람이라고 부르고, 그러지 못한 사람을 '이상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개인으로서 이러한 틀을 깨뜨리기란 불가능하므로, 우리의 자유의지는 늘상 구속된다(외딴 섬에 혼자 사는 로빈슨 크루소가 아니라면, 이라고 쓰고보니 그에게도 프라이데이라는 노예가 있었므로 무효).

Human-network

하지만, 적어도 개인적이고 미시적인 수준에서, 우리는 나나와 비슷하게 생각한다(또는 그러고 싶어한다). 우리의 구체적인 개별 행동들은, 예를 들어서 사람이 혼자서 팔을 번쩍 들고, 노래를 랄랄라 부르고, 손가락을 움직여 키보드를 쳐서 블로그에 바보 같은 포스트를 올리며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다 그 사람이 원해서 하는 일 아닌가?

 

자유의지와 준비전위

이와 관련해, 인간의 행동의 자의성에 대한 레전설 급의 신경학 연구를 소개한다. 생리학자 Benjamin Libet(1916~2007)은 신경적 활동과 감각의 문턱값(threshold; 지각이 되기 시작하는 최소한의 자극의 강도)을 연구하고 있었다. 1980년대 그의 연구의 관심은 자발적인 운동두뇌의 활동 간의 관계로 이어졌다. 그는 실험 참가자를 앉혀놓고 간단한 자의적인 운동, 예를 들어서 버튼을 누르거나 손가락이나 손목을 펴는 행동을, 아무 때건 원하는 때에 하도록 했다. 동시에 참가자들은 지시에 따라서 시계 비슷한 장치를 보면서, 움직이고픈 욕구가 드는 최초의 시간을 기억해 뒀다. 동시에 EEG(electroencephalogram)를 통해 참가자의 뇌에서 전기활동을 측정하였다(EEG는 작은 전극들을 이용하여 뇌에서 일어나는 세포들의 전기 활동을 두피에서 측정하는 기법이다. 두개골을 통과해서 오기 때문에 신호가 약하고 정확히 뇌의 어느 부분에서 신호가 오는 것인지 파악하기 힘들지만, 시간해상도가 가장 높은 기술이며 연구실이나 임상장면에서 자주 사용된다).[1][2]

그러자 참가자가 움직임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500ms(millisecond; 1000ms은 1second와 같다) 전에, 움직임을 계획하는 전두엽의 측면에 위치한 보조운동 영역(supplementary motor area)이란 곳에서 뇌의 전기적 활동이 관찰되었다. 이보다 놀라운 것은, 스스로 움직이겠다는 의지를 의식한 것은 이러한 전기적 활동이 관찰된 후(움직임이 있기 200ms 전)였다는 것이다. 이 때 전운동 피질에서의 전기신호를 Libet은 움직임에 대한 준비 작업을 나타낸다는 의미에서 준비전위(readiness potential; RP)라고 불렀다. 이러한 준비전위는 매우 두드러져서, 연구자들은 준비전위만 가지고도 80%의 정확도로 참가자가 운동을 했는지 여부뿐 아니라, 움직이려고 마음을 먹었었는지까지도 맞출 수 있었다. 이는 당시로서는 놀라운 발견이었다. 자발적인 움직임의 일부 과정은 의식으로 깨닫기 이전에 이미 뇌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발견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의 의식이 미치지 않는 부분에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할지가 어느 정도 이미 정해져있다는 말이었기에, 인과적인 결정론(causal determinism)을 뒷받침하고 부분적으로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데에 좋은 근거가 될 수 있다.

(여기서 또 앞으로 '자유의지를 부정한다'라는 말은 '물질적인 수준에서 이미 자신의 미래 행동이 의식과 무관하게 결정되었다는 것을 보였다'라는 좁은 뜻으로 사용하겠다.)

 

B

Libet의 실험 방법 요약. 사랑한다 위키피디아!
(0: 기다림, 1: -500ms 준비전위 등장, 2: -200ms 움직이겠다고 결정, 3: 0ms 움직임)


많은 학자들은 충격을 받았고, 후속 연구들이 잇따랐다. 후속 연구들에서 Libet은 의식적 자발성이, '거부하는 힘(power of veto)'에서 나온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신경세포의 활동이 의식적 경험 이전에 일어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의식은 원치 않는 움직임을 억제함으로서 운동에 참여한다는 것이다.[3][4] 이 실험은 방법론이나 해석 면에 있어서 많은 비판을 받긴했지만(예를 들어 움직이고픈 욕구를 느낀 때를 참가자 스스로 보고하게 했으니 주의분산 등에 의해 시간 측정이 불확실했을 것이라는 비판, 간단한 움직임도 단계적인 과정을 거치는 일이므로 쉽게 결론내릴 수 없다는 비판 등이 있으나 여기서는 생략),[3] 인간의 행동의 자발성에 매우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뇌: "나 자유의지 있음 흥칫뿡" - 당신: "?"

이 실험을 2011년에 다시금 심리학자들이 재현하였다[5]. 하지만 이번엔 더 흥미롭게. 참가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서 한 그룹은 자유의지를 철저하게 부정하는 글을 읽게 하고, 다른 그룹은 자유의지에 대한 언급이 없는 글을 읽게 했다. 두 글은 모두 Francis Crick(DNA의 이중나선 구조의 공동 발견자이자 노벨상 수상자로서, 신경과학 연구에도 헌신했다)놀라운 가설(Astonishing Hypothesis)에서 발췌한 것이었다. 실험 집단, 즉 첫번째 집단에게 보여주는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발췌 부분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6, 내가 발번역]

당신의 즐거움과 슬픔, 기억과 야망, 개인적인 정체성과 자유의지의 느낌은 단지 신경세포들과 관련 분자들의 거대한 조합들일뿐이다. 당신은 한 무더기의 신경세포들에 불과하다. (...) 우리는 자유 의지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의 선택들은 이미 결정되어있는 것이고, 우리는 이를 바꿀 수 없다. (...) 

이 주장은 영혼의 존재를 강하게 믿는 사람조차도 당장 물질주의적 환원론자로 둔갑시킬 법한 기세로 계속된다. 또 다른 집단은, 같은 책에서 발췌한, 자유의지에 대한 언급이 없는 의식에 대한 글을 읽었다.

흥미로운 것은 다음부터다. 연구진은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종류의 실험을 두 집단에게 진행했다. 두 집단 모두에게서 운동 전에, 자신이 인지하기 전에 준비전위가 나타난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글을 읽은 집단의 준비전위는, 일반적인 글을 읽은 집단의 준비전위에 비해서 그 크기(amplitude)가 유의미하게 감소하였다. 다시 말해서,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지표의 일종인 준비전위를, 자유의지를 부정 당한 뇌가 오히려 거부하는 것처럼 보이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7]

Rigoni_2011

실험결과 중 하나. 세로값이 전위의 크기, 가로값이 시간. 0으로 표시된 시간은 행동을 완료한, 즉 버튼을 누른 시점.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내용의 글을 읽은 집단의 준비전위(파란색)가 그렇지 않은 집단의 것(빨간색)보다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낮은 값을 보였다.

 

물론 인간이 아닌 '뇌'가 무의식적으로 무엇을 더 원하고, 거부하고 하는 식의 이야기는 수사학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자유의지에 대한 생각이, 심지어 그것이 남의 생각에 대한 짧은 노출로 인한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뇌의 생리적인 활동에까지 강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 하나만큼은 확실하다. 다른 기존의 많은 연구들은 인간의 자신의 인생에 대한 통제감이 그 사람의 학문적/직업적인 성취에 또 행복감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이처럼 자유의지에 대하여 어떠한 견해를 접하고, 받아들일지는 우리에게 너무도 중요하다. 당신은 무엇을 믿을 것인가?

 

요약

Libet의 1980년대 실험에 따르면, 인간이 움직이려는 의식적 의도를 가지기 전에 그의 뇌는 이미 그 운동을 일으키려는 전기적 활동을 보인다. 이것이 EEG에서 포착된 것을 '준비전위(RP)'라 부른다.이 실험엔 몇 가지 문제가 있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결과를, 사람이 의식하기 전에 이미 물질적 수준에서는 그 사람이 어떻게 행동할지가 결정되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며, 따라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일정 부분 부정하는 결과라고 해석한다.

흥미롭게도, Libet의 연구와 같은 패러다임을 이용한 2011년의 연구에서 자유의지를 설득력 있게 부정하는 글을 읽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서 작은 크기의 준비전위를 보였다. 즉, 자유의지를 부정당한 이들의 뇌는, 더 작은,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지표를 보였다. 이 결과는 마치 자유의지에 대한 논리적인 부정으로 인해 충격받은 사람이, 자신은 자유의지를 갖고 있다고 반항하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것은 말장난일뿐이지만, 자유의지에 대한 진지한 생각이 우리 뇌의 활동을 확연히 변화시키는 것은 확실한다.

 

여기서 무슨 거창한 존재론적인(ontological) 이야기를 할 생각은 없다. 난 내가 배운 초식으로 여기저기 들이대보는 잉크맛이 나는 멍청이일뿐이다. 이해해 주길. 다 읽어본 후의 종합적인 판단은 결국 당신의 몫이다. 당신의 생각을 들려주시면 더 고맙겠습니다.

 

주석과 참고자료

[1] Libet, B., Gleason, C. A., Wright, E. W., and Pearl, D. K. (1983). Time of conscious intention to act in relation to onset of cerebral activity (readiness-potential). The unconscious initiation of a freely voluntary act. Brain, 106. 623-642.
[2] Libet, B. (1985). Unconscious cerebral initiative and the role of conscious will in voluntary action. Behavioral and Brain Sciences,8. 529-566.
[5] Rigoni, D., Kühn, S., Sartori, G., Brass, M. (2011). Inducing disbelief in free will alters brain correlates of preconscious motor preparation: the brain minds whether we believe in free will or not. Psychological Science, 22. 613-618.
[6] Crick, F. (1994). The Astonishing Hypothesis: The Scientific Search for the Soul. New York, NY: Touchstone.
[7] 그러나 너무 쉽게 결론 내려서는 안될 것이다. 연구자들은 준비전위가 현저하게 크기가 줄어든 것은, 자유의지에 대해 일반적이고 순진한 생각을 갖고 있던 참가자들이 글을 읽고 지나친 충격을 받은 결과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즉, 그들이 단지 주의가 분산되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더 읽어볼 거리

[a] 네이버 블로그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bee4e&logNo=150113001324):  비브르 사비 이쁜 스틸 컷들
[b] Free Will - Wikipedia (http://en.wikipedia.org/wiki/Free_will): 자유의지 관련 일반적인 철학적 논의들

위험한 여자 구별법, 중국 인구, 그리고 집행기능

'위험한 여자 구별법'

한 때 '이상한 여자 구별법'이라는 글이 웹에서 유행한 적이 있다. 내용은 이런 것이다: '외모가 준수한, 순진하고 백치미가 있는 여성 중에, 아주 독특한 언행을 하는 위험한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주변 사람을 완전 돌게 만드는 능력이 있으니까, 연인 관계에 빠지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라.'

글쓴이는 이런 이들을 '완전체' 또는 '사이코'라고 부르며 이들의 특징에 대해 얘기한다. 맥락 상 '완전체'라는 말은, 이들을 현생 인류에서 진화한 어떤 생명체로 취급하는 말인 듯 하다. 이들은 공감능력이나 감정이입 능력이 없고, 감정이나 말의 변화가 극히 즉흥적이이며, 이야기를 흔히 눈웃음이나 맞장구로 술술 진행하지만 나중엔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들은 사고가 단순하고 자기중심적이며 책임감이 전혀 없다. 저자에 따르면 이런 '완전체'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이상없고, 사회생활도 비교적 잘하고 잠깐 얘기해봤을 때는 호감까지 느껴지는데 사귀는 남자들은 고통을 호소하는, 그러나 그 고통을 주변사람들에게 이해 시키기가 힘든 일을 만들어내는 사이코

다. 상당히 호들갑스럽다고 느낄 수도 있는 이 글의 말미에는 글쓴이의 '피해 사례', 또 글쓴이가 전에 쓴 글을 읽고 사람들이 보낸 사연들이 등장한다. 이 부분을 읽고 나는 이 글을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 글에 묘사된 행동들에서 상당한 일관성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특이하지만 괜찮은 사람인 줄 알고 사귀게 되었는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과 술을 마셨단 핑계로 성관계를 가졌고, 보통 사람과는 다르게 (여기부터가 중요) 그 이후로 일말의 죄책감이나 후회를 느끼지 않는듯 보인다는 이야기, 중요한 시험에 떨어지거나 가까운 사람이 죽어서 자신의 애인이 느끼게 된 고통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고 정이 떨어지더란 이야기가 등장한다.


또 이러한 사람들은 그때 그때의 상황 수습에만 신경을 써서 거짓말이나 사실과 다른 말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시간이 지난 뒤에는 자신이나 남이 한 말을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고 글쓴이는 말한다. 대화 도중에 만화책 "열혈강호"를 좋아한다고 말하자, "아 저도 재밌게 읽었어요 26권까진가 읽었는데 너무 많이 나와서 그 이후론 못 읽었네요"라고 분명히 답해놓고는, 다음에 만났을 땐 "열혈강호 좋아하신댔죠?"라고 말하면 "네? 열혈강호가 뭔가요?" - "만화책이요, 열혈강호" - "전 만화책 안 보는데요 ^^" ...이런 식이라는 것이다.

강조하고 싶은 점: 여자 중 이런 사람이 많다고 글쓴이는 주장했지만, 이야기를 꼭 여자에 한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예로부터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종종 인간의 광기를 자주 투사하곤 했으니, 이 작은 글에서까지 그 흑역사를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공감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지만 중세의 마녀사냥이라든지, '미친년'과 '미친놈'의 어감 차이 등을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따라서 이후로는 '여자/남자'로 표기하기로 한다.

이 글의 백미는 이런 '사이코'를 구별해 낼 수 있다고 글쓴이가 주장하는 세 개의 질문이다.

  1. 중국 인구가 몇 명인 줄 아세요?
  2. 컴퓨터에서 파일 복사하는 법을 아세요?
  3. 사상에서 영도까지 몇 km 정도인 줄 아세요? (답변자가 잘다니는 곳. 버스 정류장으로 한 20~30 정거장)

글쓴이는 이에 대한 대답이 얼마나 동문서답인지와 대답시 말투, 시선, 태도, 답이 나오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을 고려하라고 조언한다.

1번과 같은 질문에 보통 사람은 정확한 지식이 없더라도 '5천만', '2억', '3억'과 같이 큰 숫자를 말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글쓴이에 따르면 '위험한 여자/남자'의 경우, 1번 질문에 '10만'과 같이 터무니없는 숫자를 대답한다고 한다.

또 2번과 같은 질문에는

"아! 엑셀하고 파워포인트하고 뭐가 배우기 힘들어요?"

"복사하니까 생각나는데 얼마전에 제가 선배랑....."

(잠시 침묵) "아야야야... 아까부터 왜이리 손목이 시큼거리지.."

와 같은 식으로 질문과 관계없이 엉뚱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겨우 이딴 질문으로 한 사람을 사이코로 몰아갈 수 있는 것일까. 하지만 일견 병맛 넘치는 이 글 또는 이 글의 복제본에는 언제나 많은 사람들의 댓글들이 달린다. 내가 전에 만났던 사람이 이런 사람이다. 내 친구의 여자친구가 딱 이런 사람이었다. 내 애인이 이런 식인데 헤어져야 될까. 혹은 나는 남잔데, 내가 이런 사람이다. 등의 반응이다.

 

'중국의 인구가 몇 명일까요?'

신경심리학도인 내 주의를 잡아 끈 것은, 1번과 3번 질문이었다. 신경심리학자는 신경과학적 지식과 방법론에 기반하여 인간의 기억, 주의, 언어와 같은 인지적 능력이나 이러한 인지적 능력의 결함에 대해 연구한다. 1번과 3번 질문은 둘 다 모두 얼추 정답에 가깝게 대답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정확히 알기 힘든 지식에 대해 대략적으로 추정(estimation)하는 능력을 필요로 하는 질문이다. 그리고 이 능력은 인지 과학자들이 '집행 기능'이라고 부르는 인지적인 능력의 하위 능력이다.

그리고 집행 능력이 전반적으로 부족한 사람은, 개인별 세부 양상은 다를 수 있으나, 주의를 부적절하게 분배하여 충동적으로 행동하며, 미래를 제대로 계획하지 못해 늘 현재만을 살아간다.(혹시 이 글을 읽는 (준)전문가가 있다면 논의의 편의를 위해 거칠게 얘기하는 것을 양해해주시길) 그렇다면... '위험한 사람'은 이러한 종류의 사람이며, 중국 인구를 제대로 추정하지 못하는 것은 그러한 원인의 다양한 결과 중 하나가 아닐까? 나의 가설은 그렇다는 것이다. 이런 '위험한 사람'을 신경심리학적으로는, 집행기능 전반에 문제 있는 사람으로 구체적으로 명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집행 기능과 전전두 피질

집행 기능(executive function)이란, 환경에 적응하여 생물체가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자신의 행동을 적절하게 조절해 나갈 수 있는 상위 인지 기능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이는 마음 속으로 목표를 유지하기, 타인의 마음 읽기, 불필요한 행동의 억제, 새로운 해결책을 찾는 인지적인 유연성, 자신의 행동의 순서를 계획하기, 추상적인 사고, 수학적인 추정 등의 능력 등으로 구분될 수 있다.[1] 이는 인간에게서 특히 발달한 기능으로, 대뇌 피질의 앞 부분인 전전두 피질(prefrontal cortex)이라는 부분이 이러한 기능에 중대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피질이란 뇌의 가장 겉부분으로서 뇌세포들이 밀집되어 분포하고 있는 회색 부분을 말한다.

뇌의 모습. 주황색이 전전두 피질. 왼쪽이 앞이고 오른쪽이 뒤다.

 

위험한 사람의 집행기능의 장애 1: 행동 억제와 충동 통제의 결여

전전두 피질이 집행기능과 관계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된 것은 많은 부분 Phineas Gage라는 사람의 덕분이다. 인간의 감정이나 사회적 행동에 대한 심리학이나 신경과학 수업을 들으면 꼭 등장하는 Phineas는 19세기의 미국의 철도 건설현장의 감독이었다. 어느 날 폭파 사고로 날아온 쇠 막대기가 아래 그림과 같이 그의 머리를 관통하고 만다.

쇠 막대가 관통한 것은 그의 뇌의 가장 앞 부분, 우리가 앞서 말한 전전두 피질을 포함하는 전두엽(prefrontal lobe)이었다. 그는 기적적으로 살아나서 12년을 더 살았는데, 그 후로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의 식사 습관, 호흡, 배변 등의 건강 상태, 지식 등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문제가 생긴 것은 그의 성격이었다. 그의 친구들과 아내에 따르면 "Gage는 더이상 Gage가 아니었다."

그는 사고 전,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사고 후에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못하게 되면 쉽게 짜증을 냈으며, 장소를 불문하고 신성모독이나 외설스러운 말을 해댔다.충동을 거스르지 못하고 원하는 대로 자신의 욕구만 생각하는 동물과 같은 상태가 된 것이다.[2] 

Phineas와 정확히 같은 상태는 아니지만, '이상한 사람' 역시도 이러한 면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욕구에만 충실하고, 규범이나 남들의 시선 따위를 신경쓰지 않는다.

 

위험한 사람의 집행기능의 장애 2: 추정 능력의 결여

집행기능의 하위 능력 중 하나가 추정하는 능력이라고 앞서 밝힌 바 있다. 흥미롭게도, 실제로 집행 기능이 정상적인지 확인해 보는 검사 중에는 "키가 170cm인 여성의 척추의 길이는 얼마나 되겠습니까?" 또는 "버스의 길이가 몇 m 정도일 것이라 생각하십니까?"와 같은 질문을 포함하는 검사가 존재한다.

추정하는 능력은 추상적인 사고 능력, 일반화하는 능력을 필요로하는 매우 고급스러운 능력이다. 실제로 해부학 책을 읽어보거나 인간의 등을 갈라서 확인하지 않고도 키가 170cm 정도되는 여성의 척추 길이를 짐작하기 위해서는 지식으로는 보충될 수 없는 상상력과 추론 능력이 필요하다.

 

위험한 사람의 집행기능의 장애 3: 공감능력의 결여

집행기능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것이 공감 능력이다. 공감 능력을 심리학에선 마음 이론(theory of mind; ToM)이라고도 부른다. 남들의 생각, 의도, 견해를 추론할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ToM은 만 5-6세 때 등장하는 것으로서 생득적인 것이지만, 절대로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능력이 아니다. 이보다 어린 아이는 남들도 자신과 똑같은 지식과 선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남들이 어떤 기분을 느끼는지에 대해 알지 못한다.

우리가 남의 의도나 생각을 추론하려고 할 때에, 앞서 말한 집행 기능을 담당하는 전전두 피질 중 상대적으로 몸 가운데 쪽인, 내측 전전두 피질(medial prefrontal cortex; mPFC)라는 부위가 다른 부위들과 함께 더 많이 활성화되는 것으로 PET이나 fMRI 등의 뇌영상 연구들을 통해 반복적으로 확인되어 왔다.

성인 중에도 이러한 능력이 결여된 사람은 남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관심도 없고 알 방도도 없다. 대표적으로는 자폐증이나, 자기애성 성격장애, 또는 반사회성 성격장애(약간 다르지만 '사이코패스'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장애와 비슷)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그리고 정상인 범위에 속하긴 하지만, 남의 슬픔이나 분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피해자'들의 보고에서 '완전체' 역시도 이러한 특징을 갖고 있단 걸 확인할 수 있다.

생각해보면 이는, 2에서 말한 수학적인 추정의 감정적인 유비라고 할 수 있다. 주어진 정보를 통해서는 절대로 자신이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것이지만, 기존에 알고 있는 지식들을 조합하여 대략적으로 예측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두 가지 일을 근접한 뇌 영역이 담당하고 있다는 것은 흥미롭다.

 

위험한 사람의 집행기능의 장애 4: 주의 조절의 결여

'집행기능의 장애 1'의 연장선 상에서, '위험한 여자/남자 구별법' 글에서 묘사하는 사람들은 충동뿐 아니라, 주의를 조절하는 데에도 문제가 있다는 점을 밝혀둬야겠다. 인지 심리학은 주의(attention)를, 우리가 세상의 자극을 받아들이고 이를 처리하는 인지 과정의 여러 단계에서 적절히 배분되는, 한정된 자원으로서 생각한다. 이는 상위 인지체계의 통제에 의한 것이므로, 이 역시도 집행기능의 하위기능으로 종종 분류되곤 한다.

이야기를 하던 중 갑자기 생각이 났다고 해서, 진행되고 있는 대화 주제가 아님에도, "복사하니까 생각나는데 얼마전에 제가 선배랑....."라고 말해 버리는 데에서 '완전체'에게는 이러한 주의 통제의 능력이 없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이들은 공감 능력도 없으니 상대가 당황해할 것이라는 것도 모른다.

이처럼 주의가 떨어지기 때문에 '이상한 사람'은 그때그때의 자극에 맞추어 인생을 할게되고, 위에서 본 것처럼 사실과 다른 것도 분위기나 남들이 자신의 앞에서 하고 있는 말에 그저 맞춰 주기 위해서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요약

'위험한 여자/남자 구별법' 글은 i)충동이나 ii)주의 조절이 잘 안되고, iii)공감능력이 없어서, 주변 사람들을 괴롭게 하는 사람들을 구분하는 법을 알려준다고 주장한다. 그 중엔 중국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를 물어보는 문제 등 iv)수학적 추정능력을 필요로하는 문제가 있다. 이런 질문으로 그런 사람들을 알아낼 수 있을지 좀 개소리의 냄새가 난다.

그러나 잠깐. i)부터 iii)까지의 능력들은 인지 심리학에서 말하는 집행 기능의 하위 능력들에 속하고, iv) 역시도 그렇다(!) 그리고 전전두 피질의 부분들이 이러한 모든 기능을 담당한다. 따라서 '위험한 여자/남자'들은 집행 기능 전반에 있는 사람인 듯 보이고, 따라서 임상 신경학적으로 아마도 전전두 피질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생각되며, iv)를 필요로 하는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는 것은 i)-iii)에도 문제가 있을 가능성, 즉 '이상한 여자/남자'일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러므로 '중국 인구' 등을 물어보는 질문은 저런 류의 사람을 걸러내는 데에 어느 정도 적합할 수 있다.

 

재밌는 내용이라고 생각하고 쓰기 시작했는데, 흥미로울 수도 있는 내용을 이렇게 재미없게 쓰는 것도 능력이다.

 

 

참고자료

[1] Banich, M. T. (2004). Cognitive Neuroscience and Neuropsychology(2nd Ed). New York: Houghton Mifflin.

[2] Phineas Gage - Wikipedia. http://en.wikipedia.org/wiki/Phineas_Gage

 

Steve Jobs (1955-)

Creativity is just connecting things. When you ask creative people how they did something, they feel a little guilty because they didn't really do it, they just saw something. It seemed obvious to them after a while. That's because they were able to connect experiences they've had and synthesize new things. And the reason they were able to do that was that they've had more experiences than other people.

도랑 치고 가재 잡은 과학자들

“도랑 치고 가재 잡는다” = “꿩 먹고 알 먹고” ?
 
'도랑 치고 가재 잡는다'는 한국 속담이 있다. 우리는 이 말을 흔히 한 가지 일로 두 개의 이득을 본다는 뜻으로 사용하지만 이 속담은 본디 "일의 순서가 바뀌었기 때문에 애쓴 보람이 나타나지 않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1] 계곡이나 도랑의 돌 밑에 숨어 있는 가재를 잡으려면 가재가 있을만한 돌을 살그머니 들어 올려야 된다. 도랑을 친다고 마구 헤집으면 흙탕물이 일어 가재가 도망을 가버리므로 이는 일의 순서를 거꾸로 해가는 격이다.[2]
 
그런데 최근 과학계에서 이런 식으로 순서가 뒤집힌 발견이 일어났다. 그것도 가재를 갖고 한 연구에서.

음식재료인 줄만 알았던 로브스터가 네이처에 등장했다. 사진은 푸른 바닷가재.

음식 재료로 쓰이는 줄만 알았던 로브스터가 세계적 학술지에 등장했다. 사진은 푸른바닷가재.


가재와 신경과학? 바다 민달팽이 천적인 덕에 네이처 출연
 
캘리포니아의 챕먼 대학(Chapman University) 연구진은 바닷가재의 일종인 로브스터의 공격을 받은 바다 민달팽이들이 머리와 꼬리를 일정 시간 동안 수축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연구는 권위 있는 학술지인 네이처 뉴로사이언스(Nature Neuroscience)의 2010년 10월 자에 실렸다.[3]
 
민달팽이가 바닷 가재에게 한 대 맞아서 쫄아 있든 말든 그게 무슨 대수일까. 이 발견이 지금까지 과학자들이 이 작은 무척추동물의 아주 작은 뇌에게서 알아낸 것들과 아귀가 잘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민달팽이의 한 종류인 군소(Aplysia californica)는 뇌 세포의 개수가 적고, 상대적으로 그 크기가 커서 학습과 기억의 신경적인 메커니즘에 대해 연구하는 연구자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군소의 모습. 왼쪽이 머리이고 등에 튀어나온 관이 사이판. 사진은 서울대 생명과학부 강봉균 교수 연구실의 군소.

  

군소의 민감화를 통한 학습 연구

군소에 대한 신경과학적인 연구의 한 주제는 군소의 외부 자극에 대한 민감화(sensitiziation) 였다. 군소는 몸의 일부에 전기 자극을 해 놓으면, 그렇게 해 놓지 않았을 때보다, 사이판(siphon, 등에 나있는 빨아 올리는 관) 등 몸의 일부분을 건드렸을 때에, 몸의 일부를 더 빨리, 더 오랫 동안 수축시키고 있는다.즉, 군소는 과거의 경험을 기억한다. 원시적인 형태지만 이것은 틀림없는 학습(과거의 경험을 통해 유발된 관찰 가능한 변화)이다. 민감화는 개념들 간의 연합을 필요로 하지 않는 자동적인 과정이기 때문에 비연합 학습(disassociative learning)이라고 불린다. 생각해 보면 강한 자극을 겪은 후에 비슷한 다른 외부 자극에 민감해 지는 것은 생명체에 있어서 정말 필수적인 반응이다. 예를 들어서,

방금 지빠귀에게 잡아먹일 뻔한 벌레는 (...) 유사한 자극에 대하여 상당히 낮은 문턱으로 반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왜냐하면 그 새가 다음 몇 초 동안 여전히 근처에 있을 것이 거의 확실하기 때문이다.[4]

이렇듯 민감화 반응은 생존에 필수적인, 기억의 가장 원시적인 형태다. 민감화가 뇌에서 어떤 분자적이고 세포적인 변화를 통해 가능해지는지는 현 콜럼비아 대학 소속의 저명한 신경생물학자인 에릭 캔들(Eric R. Kandel)이 바다 군소에게 전기 충격을 주면서 60년대 후반부터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런 민감화 과정이 일어날 때에, 관련된 뇌 세포들(전기 충격을 받은 감각을 전달하는 뇌 세포와 몸 일부를 수축시키라는 운동 신호를 전달하는 뇌 세포)에서, 뇌 세포들 간의 작은 틈인 시냅스(synapse)에서 신호가 더 강해지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70년대에 마침내 일련의 연구들을 통해, 뉴런, 즉 뇌 세포 안에서의 칼슘 이온과 cAMP(cyclic AMP) 등의 물질들의 연속적인 작동이 이러한 시냅스에서의 변화에 관여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미리 가해놓은 전기 자극은 칼슘 이온 등의 물질들을 작동을 통해, 특정한 시냅스들 간의 연결 고리를 강하게 만들고, 이를 통해 나중에 군소의 행동을 더 방어적이고 예민하게...

...자세한 논의는 생략하도록 하자.

요약하자면 에릭 캔들은 군소에게 전기 충격을 줘가며 다양한 종류의 학습을 시켰고, 이에 따라 군소의 관련 뇌세포들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살펴 학습과 기억의 신경적 기전을 파악해 나갔다.
 
 
전기 충격 vs. 로브스터의 공격
 
하 지만 실제 상황에서 바다 군소가 전기 공격을 받을 일은 없다. 그래서 챕먼 대학의 연구진은 바다 군소가 실제로 같은 생태계에 존재하는 로브스터에게 군소가 공격을 받게 한 뒤, 군소들이 정말로 전기 충격을 받았을 때와 비슷한 패턴의 행동 변화를 보이는지 알아본 것이다.

연구원들은 캘리포니아의 롱 비치(Long Beach)에서 바닷 가재들을 잡아와서 길렀다. 그들은 객관적 측정을 위해 모든 군소들의 수축 반응을 비디오 테이프에 녹화했고, 어느 군소가 공격을 받았는지 알려주지 않은 채로 두 번째의 약한 자극을 받았을 때 군소가 수축하는 정도를 전문가들에게 재도록 부탁했다. (이 정도의 간단해 보이는 실험을 하는 데에도 과학자들이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를 보면 놀라울 정도다. 사실 이렇게 해야만 한다. 진정 오타쿠들만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 결과, 로브스터의 공격을 받은 군소들이 나중의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서 정말로 더 오랫 동안 머리나 꼬리를 수축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정말로 알아내려는 것을 우리가 잘 알아내고 있는지 여부'를 과학에서는 타당도(validity)라 고 일컫는다. 이런 점에서 기존의 군소 연구들에는 생태적 타당도(ecological validity)의 문제가 존재했었던 것이다. 여태 알아 낸 민감화가 실제 환경에서 받을 일이 있는 공격과 유사한지 알아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릭 캔들은 앞서 말한 군소를 이용한 연구 등을 통해 학습과 기억의 분자신경학적인 메커니즘에서 발견을 해낸 뛰어난 공로를 인정 받아 2000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에릭 캔들 이래로 신경과학자들은 수십 년 간 군소에게 전기 충격을 줘오면서도, 그것이 실제 군소가 자연계에서 학습할 만한 외부 자극인지에 대해서는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사실 군소들이 실제 포식자의 공격에 의해 민감해졌을 때에 다른 비슷한 약한 자극에 의해 몸 일부를 더 오래 수축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에라야, 이러한 학습의 신경적 기전을 알아내기 위해 전기 충격으로 그 공격을 대체하는 것이 순서에 맞았을 것인데도 말이다.


 

논문의 두번 째 저자인 골드스타인 연구원이 바닷가제 '제우스'를 돌보고 있다. [5]


지식을 쌓아가는 공동작업, 과학

이제 와서긴 하지만, 챕먼 연구진은 도랑 쳐놓은 계곡에서 가재를 잡았다(정확히 말하자면 도랑이 아닌 바다지만).  지난 군소를 통한 기억의 분자생물학적 기전에 관한 연구들을, 촘촘하게 쌓아올려진 벽돌로 만들어진 성이라고 한다면, 성의 벽면 한 구석에 비어 있던 작은 구멍에 그들은 벽돌 하나를 박아 넣었다. 성은 이제 더욱 견고해졌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리고 과학에 그닥 관여하지 않는 일반인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과학은 천재 과학자가 홀로 이뤄내는 것이 아니라, 과학 사회의 공동 작업을 통해 발전, 변화해 나가는 작업이다. 기존 연구에 대한 동료 과학자들의 비판과 반복되는 검증. 바로 거기에 과학의 힘이 있다. 그리고 네이처에의 출판이라는 작지 않은 성공에 챕먼 대학의 연구원들은 아주 신이 났다. 2010년 겨울, 라이트(Wright) 박사와 학생들은 카탈리나 섬 해양 보호 구역에서, 이번에는 야생 로브스터와 바다 군소들을 통한 실험을 반복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5]

 

참고자료

[1] 믿음이 부족한 자를 위한 네이버 사전 "도랑 치고 가재 잡는다" 뜻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링크.

[2] 우보. (2008, Mar 2). 도랑 치고 가재 잡는다 [Weblog post]. Retrieved from http://blog.naver.com/pih66?Redirect=Log&logNo=60048610493

[3] Watkins, A. J., Goldstein, D. A., Lee, L. C., Pepino, C. J., Tillett, S. L., Ross, F. E., Wilder, E. M., Zachary, V. A. & Wright W. G. (2010). Lobster attack induces sensitization in the sea hare, Aplysia Californica. Journal of Neuroscience, 30, 11028-11031.

[4] 캔들. (2009). 기억을 찾아서. 전대호 (역). E. R. Kandel의 In Search of Memory. 서울: 랜덤 하우스. (Original work published in 2006)에서 재인용.

[5] Chapman University. (2010, October 20). Chapman University researchers find big answers in little sea slugs. In Happenings: The Latest News about Chapman University. Retrieved from http://chapmannews.wordpress.com/2010/10/20/chapman-university-researchers-find-big-answers-in-little-sea-slugs

'잉크맛 간식' - 심리학 블로그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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